
에릭 홉스봄

2025.11.02 14:36
Captured Moment
1780년대는 왕과 귀족의 시대에서 계몽을 통한 이성과 자유, 평등의 혁명이 일어나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속에서 부르주아의 자본주의가 태동한 시기였다.
혁명의 시대
혁명의 시대 - 1장 1780년대의 시대 25.11.2 1780년대는 현대세계에 비해 훨씬 작기도 하고 동시에 훨씬 크기도 했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상의 전리역 중 극히 일부만을 알고 있었지만 통신과 기술이 미약했기에 실제로는 현재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였다. 육로보다 수상의 속도가 빠르기에 항구에 가까이 있는 것이 세계에 가까이 있는 것이었다. 1789년의 세계는 압도적으로 농촌적이었다. 대부분의 인구가 농촌 인구였으며 영주와 귀족들이 지배하는 시대로 고골리의 검찰관은 부자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 위해, 그리고 치치코프는 죽은 영혼의 매입을 생각하기 위해 소도시들로 향했다. 그러나 이 소도시들은 민증을 얻게 될 로베스피에르, 바뵈프, 나폴레옹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농업 문제는 1789년의 세계에서 기본적인 것이었으며, 대륙에서의 최초의 체계적 경제학파였던 프랑스의 중농학파가 왜 토지를 지대를 순소득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농업 문제의 요점은 토지를 경락하는 사람과 그것을 소유한 사람, 즉 부를 생산하는 사람과 그것을 축적하는 사람의 관계였다. 농민이나 노동자에게는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신사'였고 지배계급의 일원이었으며, 역으로 귀족적 또는 품위 있는 신분은 토지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다. 봉건 질서가 여러 가지 점에서 분명히 휘청거린 영국에서도 토지 소유와 지배계급 신분의 연관은 존재했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긴밀해졌다. 18세기에 깊숙이 스며든 인간의 지식, 합리성, 부, 문명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지배 등에서 진보에 대한 신념이던 '계몽운동'은 그 설득력을 1차적으로 생산/상업에서 명백한 진보와 필연적으로 결합된 경제적/과학적 합리성을 끌어냈다. 그렇게 인쇄업자이자 신문인이며 발명가이자 기업가이며 정치가이자 빈틈없는 실업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타난다. 그들의 활동으로 나타날 사회 질서는 부르주아적이며 자본주의적인 것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는 신·구 체제의 전쟁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고전적이고 귀족적인 절대군주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 사회 질서에 대한 신질서의 우위를 이 양대 강국 사이의 투쟁보다 더욱 생생하게 예증해 주는 것은 없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은 프랑스에게 역습할 기회를 주고, 프랑스는 그 기회로 당국은 참패하고 아메리카 합중국의 동맹국인 프랑스가 승리했다. 하지만 대가는 엄청났으며 그로 인해 프랑스 정부는 곤경에 처했다. 그 결과 이국내적 정치 위기로부터 6년 후의 프랑스 혁명을 배양하고 있던 것이다. 왕과 귀족의 시대에서 인간의 이성과 자유, 평등의 혁명이 시작된 178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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